2019 전라남도 대안교육 정책포럼 발제자로 참가한 한울고등학교 3학년 봉찬우 학생의 주제발표 내용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학교 - 한울고등학교 3학년 봉찬우 -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어는 고등학교를 다닐까 고민을 많이 했고 열심히 찾아보았다. 먼저 지역을 고려하였다. 담양에 살고 있지만 담양은 벗어나고 싶어서 전남권내에서 집과는 멀지 않은 광주근처 시 군 소재 고등학교를 가기로 생각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와 특성화 고등학교 두 곳을 고려하면서 찾다가 마음에드는 학과가 있는 특성화고를 발견했지만 집과는 거리가 멀고 사립이었기 때문에 바로 접었다. 아빠의 부탁 아닌 부탁, 수능으로 대학가지라는 가벼운 생각, 더 이상 원하는 고등학교를 찾지 못하는 등 3가지가 맞물려서 결국 담양에 위치한 사립 인문계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때 당시에는 대안학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만약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가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라는 질문, 비판의식과 같은 것들이 아직 제대로 깨우쳐 있지 않은 생태여서 애초에 한국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대안교육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창평고를 1년 정도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학교가 정말 문제구나라는 것을 말이다. 좀 더 본질적으로 본다면 교육 대학입시문제로 인한 폐해인 것을 말이다. 권위주의적인 교사들, 학생 인권의 결여, 대학 잘 보내는 것만을 목표로 한 학교 등 이러한 문제를 겪어보면서 나로 하여금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였다. 상위권 대학으로 보내 학교의 명성을 올리고 싶은 이 학교에 있어야 할까? 내가 꼭 대학을 가야 할까? 스트레스는 쌓일 대로 쌓인 생태에서 더는 이 학교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책, 신문 등 관련 들을 많이 읽다가 우연히 대안학교를 발견하였다. 대안학교의 설립 목적을 읽으면서 내가 다닐 곳은 여기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한 결과 한울고를 선택했고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나는 한울고를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갔다. 자세히 알지 못했고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만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느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될 존중, 배려, 나눔이라는 한울고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 자체는 좋다고 느낀다. 타 학교에 비해 수업 시수가 적은 교과목 수업, 국토순례, 통합기행, 매 학년 때마다 하는 팀 프로젝트,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해봄프로그램 등이 매력적이고 교육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설도 다른 일반학교에는 없는 노래방, 당구장 등이 있다. 아쉬운 점은 건물이 상상력, 창의성을 일깨울 수 있도록 다양한 디자인을 이용한 건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획일적이다. 아무튼 정말 친구들이 이런 학교가 존재하고 색다른 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한울고도 나에게 창평고에서의 경험을 통해 느낀 문제점만큼이나 또 다른 문제점을 알게 해주고 고민하게 하게끔 했다. 한울고는 태봉고와는 달리 준비가 미흡 된 상태로 학교가 설립되었다고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준비란 ‘어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와 ’그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떤 교육내용을 가져 갈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러한 상황이 명확하지 않으니 이 또한 폐단이 생기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대안교육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대안학교가 있다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소위 말하는 문제학 생들을 다수 입학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다른 학생과 교사에 대한 예절과 배려가 부족하거나 학교교육을 수용하고 열심히 하려는 의지보다 본인들이 필요한 몇 가지 교육만을 선택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아이들에 반하여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채로 생활하면서 인성도 갖춘 아이들도 당연히 있다. 이 두 부류의 아이들이 같이 학교생활을 하니 대안교육을 원해서 다니는 학생들이 직 간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몇몇 선생님 말씀을 빌리자면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치료기관이 아니다. 배우고 깨닫는 곳이다. 한빛고나 태봉고처럼 대안학교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학생들로 구성하고 분리한다면 좋을 것 같다. 교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자면 대안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로 채워지면 당연히 좋지만 창평고 같이 권위주의적인 선생님들도 대안학교를 경험해 봄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면 한다. 교사라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학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보기가 힘들 수 있다. 내 주제는 우리가 꿈꾸는 학교였다. 나는 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우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지칭하는 단어일까? 학생이다. 이 학생들이 대안 교육에 관심 있거나 대안학교를 재학 중인 아이들만을 가리키는 단얼까? 아니면 심지어 관심 없는 아이들까지 포함하는 모든 학생을 지칭하는 단어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핵심은 앞서 말했다시피 내가 그 우리를 잘 대변하다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대안교육의 포럼에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며 한다. 결국은 학생들을 위해서 포럼을 개최했고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기 때문이다.